sarazida, 2009
artist statement
은평 뉴타운에 관한 어떤 메모
현실이 사진을 편집한다
은평 뉴타운은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내, 외동과 구파발동 일대에 걸쳐있다. 통일로가 지나가는 곳이므로 간단히 말해 서울 북쪽 외곽 끝 즉, 변두리이다. 내가 은평 뉴타운에 대한 사진을 찍고 관심을 가진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혹은 걸어서 은평 지역을 둘러보러 다닌 것은 불광1동으로 이사를 한 해인 2001년 여름. 작업실에서 북한산을 오르는 길이 먼저 흥미를 끌었다. 그 길은 북한산 수리봉 뒤편 산자락에 나있었다. 물론 정규 등산로가 아닌 길들이었다.
심심할 때면 샌들이나 슬리퍼를 신고도 웬만한 높이 까지는 오를 수 있었고, 오르다 힘들면 바위 비탈에 주저앉아 산 아래 더러운 책처럼 펼쳐진 집들과 한강 너머 뿌연 먼지로 흐려진 도시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지금은 정규 등산로를 제외한 모든 길들이 철책으로 막혀 그런 재미도 사라져 버렸다.
다음으로는 지하철 6호선 독바위 역을 지나 폭포동으로 가는 길이었다. 역시 북한산 산자락이고 등산 코스가 있지만 그 길보다는 개울을 따라 지어진 집들과 마을, 들판과 주말농장을 살피는 것이 좋았다. 주위엔 꽃 농장이 많아 여름이면 백일홍 나무가 연자주색 꽃을 무더기로 피우곤 했다. 폭포동 길을 따라 은평 웹 미디어 고등학교와 신도 초등학교를 지나 구파발역에 이르는 길도 흥미 만점이었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은 읍, 면 단위 소도시의 분위기가 있었고 시간도 느릿하게 흐르는 듯했다. 구파발이나 기자촌 앞에서 진관사로 가는 길과, 거기서 오르는 북한산에 등산로도 좋았다. 그밖에도 한양주택, 기자촌 앞의 마을들도 둘러 볼만 했다.
동네와 길들을 바라보며 농촌 분위기와 도시 변두리의 분위기 사이에 있는 이 기묘한 공간을 느긋하게 탐색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때가 2002년 무렵, 실제로 틈틈이 사진을 찍으러 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갑자기 뉴 타운 계획이 발표되었다. 뉴 타운이 발표되자 여러 가지가 바뀌었다. 가장 큰 변화의 하나는 뉴 타운 계획이 발표되기 이전에 찍은 모든 사진들의 맥락이 완전히 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사진에는 정체성이 없다는 존 택의 말이 옳다.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그저 일단 찍어 두자 내지는 농촌과 도시 사이의 접점과 변이를 추적해 보려는 의도가 있었다. 때문에 지금처럼 사라진 뉴 타운 지역에 대한 기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라진 것들에 대한 의도하지 않은 기록이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설사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은 먼 훗날이 되리라고 생각했었다.
한 마디로 현실의 변화가 사진의 맥락을 바꾸고 사진을 다시 편집하고 위치를 전환시켜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개발적 상상력-시골스러운 변두리 동네를 쓸어버리고 아파트를 짓는다는 토목공사적 상상력이 사진적 상상력을 훨씬 앞질러버린 것이다. 때문에 뉴 타운 이후의 사진은 결국 뉴 타운에 대한 우연한, 의도하지 않은 기록 사진의 성격을 띠고 말았다.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든 간에.
뉴 타운 개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 지구와 2 지구의 아파트 건축은 한참 진행 중이고, 3 지구의 일부는 이제 기반 공사가 끝나가고, 나중에 편입된 기자촌은 아직 주민들의 이주도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 사진과 기타 작업 결과물들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그럴 의도도 없었고 계획도 없었다. 하지만 결국 이 의도하지 않은 사진들이 은평 뉴타운에 대한 어떤 기록이 된 것이다.
시선의 구체성
사진은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구체의 과학인 원주민들의 사고와 유사하다. 그리고 그 구체의 과학은 신화적 사고이다. 레비스트로스에 따르자면 신화적 사고는 표상(image)에 묶인 채 지각(percept)과 개념(concept)의 중간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표상인 사진의 위치는 지각과 개념 사이에 있다.
아니다. 오히려 사진보다는 사진을 찍으려는 자의 태도, 세계를 보는 시선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나 아닐까? 카메라를 들고 걸어서 사진을 찍기 위해 사라질 동네, 지금 무너져가는 마을을 들여다보면 전체적인 개념- 예를 들어 개발, 개발 과정의 강제성, 강제성의 배후에 있는 시스템, 원주민들의 입주 비율 따위의 추상적, 경제적, 정치적인-들보다는 지금 눈 앞에 있는 사물들의 구체성에 사로잡히게 된다. 내게 있어 그 구체성은 마을의 개와 나무와 꽃들이다. 아난이 여시아문 일시불(如是我聞 一時佛)- 내 부처한테 이렇게 들었노라, 이렇게 보았노라고 했던 것처럼 이미지를 보고 그것을 옮기는 일종의 구체성에 관한 관음증 혹은 절시증적 상태에 빠지게 된다. 사진이란 결국 대상을 통해 자신을 보는 것이다. 은평 뉴타운을 통해 우리, 우리의 욕망을.
차등적 공포, 마을들
은평 뉴타운은 대개는 그린 벨트 지역이었다. 그린 벨트가 해제되고 개발이 시작되고,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갈 곳이 사라진다. 도시민들에게 전유 되었던 장소를 아파트 단지, 뉴타운으로 재전유 하는 과정에서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의견, 이익은 무시되고 부차적이 된다.
마을들 역시 사라진다. 물푸레골, 폭포동, 못자리골, 삼천리골… 등등의 오랜된 마을들과 한양주택, 문석주택 등의 70년대 무렵 건설된 마을들이 있었다. 한양주택은 철거와 개발에 대한 저항 때문에 제법 잘 알려진 곳이다. 70년대, 박정희 치하 남북회담이 처음 열리던 시절 일종의 전시용 마을로 통일로 변에 세워졌다는 동네이다. 낮은 단층 주택, 넓은 가로 전원주택 분위기가 나는 살기 좋아보이는 마을이었다.(내가 살아본적은 없으므로) 지금은 한창 공사중이다. 버스를 타고 지나다보면 철제 울타리와 타워 크레인이 보일 뿐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하는 유동적 공포가 여기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자본의 입장에서 별 가치 없는 마을을 쓸어버리는 것은 근대성의 오작동이 아니라 그 본질이라는. 법 질서 유지와 경제발전이라는 근대화 과정에서 사람을 비롯한 모든 것은 배려할 가치가 있는 부류와 가치가 없는 삶으로 구분되고 그 과정에서 공포 또한 차등 분배된다는. 뉴올리언즈의 흑인들이나 용산 세입자들 처럼. 용산 건설 커넥션과 공권력은 무죄고 세입자들은 구속된다. 물론 분노 또한 차등 분배된다.
spectasio: 구경거리, 보는 행위, 보이는 것, 관조, 주시
사진은 그 무엇이 됐든지 간에 피사체를 변형시키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할 만큼 어떤 이미지를 아름답게(혹은 금찍하거나 견딜 수 없을 만한 것으로, 그도 아니면 꽤 견뎌낼 만한 것으로)만들 수도 있다. 예술 자체가 뭔가 를 변형시키는 작업이긴 하다. 그렇지만 비참한 일들과 비난받아 마땅한 일들의 증인이 되어주는 사진은 ‘미학적’인 듯이 보이기만 하면, 간단히 말해서 지나치게 예술인 듯하면 상당한 비난을 받는다.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retarding the pain of others
그러나 사진이 예술에 접근하는 것은, 회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연극을 통해서이다.(나에게는 그렇게 생각된다.) 우리는 사진의 기원에 항상 니엡스와 다게르(물론 후자가 어느 정도 전자의 위치를 빼앗기는 했지만)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다게르는 니엡스의 발명품을 표절한 다음 샤또 광장에서 빛의 움직임과 유희에 의한 회전 그림연극을 상연했다. 요컨대 어둠상자는 원근화, 사진, 투시화를 동시에 보여주었으며, 이 세 가지는 모두가 바로 무대예술이다.
–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두 개의 인용은 두 개의 변명이다. 하나는 인화된 사진에 관하여, 하나는 슬라이드 쇼에 관해서다.
부록
은평 뉴타운 시범지구
이 지역은 지난 30여년간 개발제한구역 및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주거환경이 열악할 뿐 아니라 도시기반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종합적이고 계획적인 개발이 필요했던 곳입니다.
이제 주거· 업무· 문화· 공공시설 등을 고루 갖춘 신 시가지형 뉴타운으로 새롭게 변신합니다.
사업개요
위 치 : 은평구 진관동 일원
면 적 : 3,492,421㎡
사업기간 : 2002.10 ~ 2011.10
공공시설 : 녹지율 30.4%, 학교 11개소 등 도시기반시설 58.7%
수용인구 : 총 45,281인(2.8인/세대 기준)
사업방식: 도시개발사업(전면수용방식, 지구별 분할시행)
구 분 계 1지구 2지구 3지구
면적(천㎡) 3,492 777 7 27 1,988
건립호수 16,172 4,660 5,134 6,378
사업기간 2002~2011 2002~2008 2004~2010 2005~2011
주택건설 : 16,172호(분양 10,918 / 임대 5,006 / 단독 248)
유형 및 평형 계 1지구 2지구 3지구
계 16,172 4,660 5,134 6,378
공동주택 합계 15,924 4,660 5,134 6,130
임대 소계 5,797(2,979) 1,699(660) 1,623(859) 2,475(1,460)
단독 248 – – 248
추진경위
‘02.10.23 : 뉴타운 시범사업 선정
‘03.12.30 : 도시개발구역지정승인(건설교통부)
‘04. 2.10 : 개발제한구역 해제 고시
‘04. 2.25 : 도시개발구역지정 및 개발계획 고시
‘04.10.19 : 이주대책 기준공고(기준일 : 2002.11.30)
‘04.12.20 : 1지구 실시계획인가
‘04.12.31 : 1지구 주택건설 사업계획승인
‘05.12.30 : 2지구 실시계획인가
‘05.12.30 : 2지구 주택건설 사업계획승인
‘06.12.28 : 3지구 실시계획인가
‘06.12.29 : 3지구 주택건설 사업계획승인
‘07.10.18 : 재정비촉진계획변경고시
‘07.12.05 : 1지구 입주자 모집공고
‘08.01.03 : 실시계획변경 인가고시
‘08.06.01~07.31 : 1지구 입주(못자리골 7.1~8.31)
‘08.07.30 : 1지구 잔여물량 및 2지구 A공구 일반분양
‘08.12.22 : 2지구 A공구 준공
‘08.12.29 : 2지구 A공구 13단지 입주
‘09.01.22 : 2지구 A공구 1,12단지 입주
‘09.12. : 2지구 B,C공구 및 3지구 C공구 준공
‘10.03. : 3지구 B공구 준공
‘10.06. : 3지구 D공구 준공
‘10.09. : 3지구 A공구 준공
article
어색하고 난처한 개입 [강선학 미술비평가]
풍경의 사라짐 속에서 소멸하는 삶 [강수미 미술비평가]
파생 이미지의 진실 혹은 거짓 [강수미 미술비평가]
사진, 사라지는 것들, 대안기억 [민병직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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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사라지는 것에 대한 기록감성시대의 인간 탐구 [이대범 미술평론가]
강홍구
1956년 출생
[학력]
1976 목포교육대학 졸업
1987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1990 홍익대학교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2017 안개와 서리-10년, 원앤 제이 갤러리, 서울
2016 청주 – 일곱 마을의 도시, 우민아트센터, 청주
2016 청주 – 일곱 마을의 도시, 스페이스22, 서울
2016 under print – 참새와 짜장면, 서학동 사진관, 전주
2015 under print – 참새와 짜장면, 원앤제이 갤러리, 서울
2013 서울 산경, 테이크아웃 드로잉, 서울
2013 사람의 집 – 프로세믹스 부산, 고은사진미술관, 부산 • 우민아트센터, 청주 • 원앤제이 갤러리 • 트렁크 갤러리, 서울
2012 녹색연구, 원앤제이 갤러리, 서울
2011 서늘한 집, 고은사진미술관, 부산
2010 그 집, 원앤제이 갤러리, 서울
2009 사라지다 – 은평 뉴타운에 대한 어떤 기록, 몽인아트센터, 서울
2006 풍경과 놀다, 리움미술관 로댕갤러리, 서울
2006 어의도 가는 길, space kandada, 도쿄
2004 오쇠리 풍경, 갤러리 숲, 서울
2003 드라마 세트, 대안공간 풀, 서울
2002 한강시민 공원, 요스카 뷰잉룸, 도쿄
1999 위치, 속물, 가짜, 금호미술관, 서울 • 갤러리 그림시, 수원
1992 갤러리 사각, 서울
[그룹전]
2018 프레임 너머의 프레임, 대구 미술관, 대구
2018 붉은 땅 푸른강 검은 갯벌, 오승우 미술관 , 무안}
2018 균열-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특별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8 아트 인 팔레트 2018, 광주 전남 갤러리, 서울
2018 유유산수, 세종문화회관, 서울
2017 풀이 선다, 대안공간 풀
2017 신소장품 2013~16 삼라만상,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6 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서울
2016 리서치, 리서치, 우정국 아트센터, 서울
2016 끝은 시작이다, 원앤제이 신당동, 서울
2016 동백꽃 뮐푀유, 아르코 미술관, 서울
2016 1990년대 한국미술,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16 말 없는 미술, 하이트 콜렉션, 서울
2016 사회 속 미술 – 행복의 나라, 북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15 루나포토 페스티벌, 갤러리 류가헌, 서울
2015 대망명 大亡命 The Great Asylum, 테이크 아웃 드로잉, 서울
2015 공간의 재해석 Space Redefined, jj 갤러리, 서울
2015 peace voice nice, 경남도립미술관, 창원_
2015 강홍구, 박진영 사진전 – 우리가 알던 도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5 최진욱, 강홍구 이인전 – 탈주의 방법, 갤러리 룩스, 서울
2014 사회적 풍경 Parallax view, LIG 아트스페이스, 서울
2014 한강의 어제와 오늘, 세빛 섬, 서울
2014 강북의 달, 북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14 콜라주 아트, 경기도미술관, 안산
2013 다시 쓰기, 두산갤러리, 서울
2013 현대적 관광, 일현미술관, 양양
2013 근대성의 새 발견, 문화서울역 284, 서울
2013 아티스트 포트폴리오, 사비나미술관, 서울
2013 그날의 훌라 송, 고은사진미술관, 부산
2013 사진과 도시, 경남도립미술관, 창원
2012 이것이 대중미술이다, 세종문화회관, 서울
2012 히든 트랙,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12 화이트 서머, 신세계갤러리, 서울
2012 진도 소리, 삶을 그리다, 광주 신세계갤러리, 광주
2012 (불)가능한 풍경, 리움미술관 플라토, 서울
2012 천개의 마을, 천개의 기억,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12 메타데이터: 전복적 사진 , 우민아트센터, 청주
2012 한국 현대미술 – 시간의 풍경들, 성남아트센터, 성남
2012 진단적 정신, 카트스트로피,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서울
2009 강홍구, 노순택- 늙은 개와 구르는 돌, 갤러리 킹, 서울
외 다수
[작품소장]
부산시립미술관, 부산
아트선재센터, 서울
뚜르미술관,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부산민주화공원, 부산
문예진흥위원회, 서울
5.18기념재단, 광주
한미사진미술관, 서울
경기도미술관, 안산
삼성리움미술관, 서울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몽인아트센터, 서울
고은사진미술관, 부산
우민아트센터, 청주
[출판]
2018 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 20년 후, 이안, 서울
2017 강홍구 , 핵사곤, 서울
2016 청주-일곱 마을의 도시, 우민아트센터, 청주
2015 우리가 알던 도시, 국립 현대 미술관, 과천
2013 사람의 집-프로세믹스 부산, 고은사진미술관
2010 작품집, 강홍구 1996-2010, 원앤제이
2006 디카를 들고 어슬렁, 마로니에 북스
2002 그림 속으로 난 길 외, 아트북스
2001 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 황금가지
1995 앤디 워홀 : 거울을 가진 마술사의 신화 , 도서출판 재원
1994 미술관 밖에서 만나는 미술 이야기1.2, 내일을 여는 책
[수상]
2015 루나 포토 페스티벌 올해의 작가
2008 동강 사진예술상, 동강 사진예술 위원회
2006 올해의 예술가상 시각예술부문, 문예진흥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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