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희 유작전영원히 닫힌 공간에서(The Day Dreams) / 1996년 12월 사진예술 / 1996년 11월 1일~10일 지현갤러리
고(故) 박건희
1967년 강원도 춘천생
1986년 제1회 개인전
1991년 제2회 개인전.<학전소극장 초대전>
1993년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졸업
1993-1994년 파리유학
1995년 2월 (주)다음커뮤니케이션 공동 창업
1995년 4월 국내 최초의 인터넷 가상갤러리
버추얼 갤러리’ 운영 및 인터넷에서의 세 번째 개인전 ‘images, images’
1995년 10월 10일 심장마비로 사망
박건희 혹은 그의 사진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항상 몇 년 전 그에게서 들었던 한마디 말이 떠오른다. 그가 파리에서 잠깐 머물 때 우리는 세느강의,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어떤 다리 근처 강변에서 만났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내가 물었다. “그래, 파리의 생활은 어떤가? 서울과는 많이 다르지?”, 그때 그는 다리 밑으로 계속 숨어 들어가던 강물을 한참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글쎄 마찬가지지요. 잠시 공간이 이동했을 뿐인데요.” 순간 나는 ‘아차, 이런 우문(愚問)이 있나’하고 생각했고, 그 일로 인해 나는 그의 삶과 사진을 이해할 수 있는 키 워드를 갖게 되었다.
건희의 사진들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가 말한 단어들 ‘공간’그리고 ‘이동’의 의미를 새삼스레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의미에서가 아닌 그 자신의 공간 내에서 기능하는 의미로서 말이다. 물론 그의 삶이 짧았던 만큼 사진작가로서의 그의 이력도 몇 년 되지 않고 작품의 수 또한 많지 않기 때문에, 그런 단어의 박건희적 – 굳이 말을 붙이자면 – 전망(Weltansichten)이 사진 담론의 요소로 작용하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그의 사진, 또는 이미지를 이해하려면 그 두 단어에 대한 그의 전망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한 사진가로서 뿐만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도 어느 누구보다도 자신이 설정한 그물망 속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그래, 파리의 생활은 어떤가? 서울과는 많이 다르지?”, 그때 그는 다리 밑으로 계속 숨어 들어가던 강물을 한참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글쎄 마찬가지지요. 잠시 공간이 이동했을 뿐인데요.”
일반적으로 공간이란 원래 물리적 개념이다. 굳이 사전적으로 설명하면 모든 방향으로 퍼져있는 빈 곳을 가리키며, 환경이나 지역에 관계되는 어떤 모양을 말한다. 그리고 그 공간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일차적 요소이다. 하지만 건희의 공간은 이런 물리적 상태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현상이며, 이 심리적 공간은 사진의 프레임이라는 물리적 상태로 최종 환원되어 나타난다. 그에게 있어 서울에서 파리로의 이주는 자신이 설정한 공간이 존재하는 물리적 공간의 좌표 이동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그의 의식은 외부 환경 또는 자신이 서 있는 지역의 변화에 관계없이 자신의 공간은 그 모양 그대로 존재하고 또 계속해서 지켜가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 의지는 사진의 프레임 – 작가의 시각이라고 표현해도 좋다 – 을 통해 실현된다.
건희의 전망에서 이동이란 말의 의미 또한 색다르다. 이동은 얼핏 생각하면 공간을 위한 단어 같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공간과 대비되는 시각의 개념이다. 국어사전에서 이동은 ‘옮겨 움직임’ 또는 ‘움직여서 자리를 바꿈’이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두 가지 설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움직임에 더 큰 비중이 있으며, 움직임은 곧 시간의 경과를 의미하며 동시에 반드시 공간의 변화를 수반한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박건희에게 있어 공간의 변화란 존재하지 않거나 용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 이동이란 일반적 의미의 이동과 다름이 분명해진다. 공간의 필연적 변화를 가져오는 – 그의 세계에 좀 더 충실하면서 완곡하게 표현하면 자신의 공간이 침윤 당하게 되는 – 시간의 흐름을 거부한 그에게 이동은 시간을 정지시키고 이를 통해 자신의 공간을 지키려는 의지의 역설적인 드러남이다.
건희가 남긴 사진작업은 그가 사진에서나 삶에서나 스스로 자신만의 공간 – 자신의 방이라고 말해도 좋다 – 을 만들고 이를 외적 힘, 즉 외적 환경의 침범으로부터 지키려고 얼마나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어쩔 수 없는 외부와의 접촉으로 인해 발생하는 흐릿한 간섭, 그래서 손상받기 쉬운 자신의 공간을 지키려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기 영혼의 해방을 향한 꿈을 꾼다. 학생에서 군인으로 또 주목받는 사진가로, 서울에서 전방으로 또 파리로 그 지역적, 사회적 위치를 이동해 가면서도, 그 이동의 개념을 바꾸면서까지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그 공간이었다. 그의 사진은 그래서 지독한 나르시즘의 구현이면서, 동시에 해방과 자유를 위한 열정의 불태움이다.
건희의 작업을 자세히 보자. <자화상>에서 <백일몽> 시리즈를 거치면서 그는 자신을 외부로부터 고립시켜 닫힌 공간을 만들었고, 이 안에서 자신의 고뇌, 공포, 자아 분열, 상처, 외로움, 그리고 환희 등을 오가며 이미지를 유희한다. 자기 스스로를대상으로 해서 했던 작업이다.
일반적으로 나르시즘은 부정의 뉘앙스를 갖는다. 하지만 많은 연구가들은 우리가 ‘나르시스에게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자아 속으로의 잠김이 아니라 자아의 눈뜸. 다시 말해 자아의 분열’이라고 말한다. 건희가 자신의 공간에 그토록 집착한 것은 그 공간만이 어머니의 자궁처럼 안전하게 자아의 분열을 지속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사진은 자아에의 눈뜸과 천착 즉 자아의 분열을 통해 성장하는 한 인간과 예술을 보여준다. 지독하다 할만한 나르시즘이 그의 사진 전체에 흐르는 것은 단순한 자기 만족이 아니라, 자신의 현실적 모습과 상상적 모습 사이에 떠있는 자아 존재의 문제에 대한 인식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건희의 작업을 자세히 보자. <자화상>에서 <백일몽> 시리즈를 거치면서 그는 자신을 외부로부터 고립시켜 닫힌 공간을 만들었고, 이 안에서 자신의 고뇌, 공포, 자아 분열, 상처, 외로움, 사랑 그리고 환희 등을 오가며 이미지를 유희한다. 자기 스스로를 대상으로 해서 했던 작업이다. 한편으로 <여름캠프>, <티비>, <유럽 여행>, <사랑> 그리고 <무제>의 시리즈를 통해 외부로부터 침윤당하는 자아의 공간을 지키기 위한 영혼의 결합을 시도한다. 자신이 원했든 그렇지 않았든 어차피 자기에게로 다가와 공간의 한쪽을 흐리게 할 것이면, 차라리 대상을 끌어안고 자신의 공간으로 완전히 편입시키는 방법이었다. 여행에서 만난 팬터마임 연기자나 사랑한 여인의 사진에서 보이는 영혼의 떨림은 그들이 건희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순간의 울림일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자신의 공간을 지킨다.
건희의 닫힌 공간은 사람의 가슴을 저미게 만든다. 스스로 아무리 만족스럽다 할지라도, 세상에 자기를 조금은 내맡겨 편안함을 얻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의 공간은 답답하면서 힘들고 위태로워 보인다. 그런 닫힌 공간을 끌고 가기엔 세상이 너무 버겁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버거움을 감당하지 못했을까. 건희는 생의 끝자락에 알든 모를 듯한 사진 몇 장을 남기고 그 모호함 속에 갑자기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박건희는 1967년 강원도 춘천에서 사녀 일남의 막내로 태어났고, 중앙대 사진학과에서 사진을 공부했으며, 1995년 10월 10일 아침 자기 집에서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글. 박주석(광주대 교수,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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