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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있는 사색의 공간 Virtual Gallery ‘다음커뮤니케이션’ / 1995년 7월 Internet 창간호

더운 공기를 재촉하는 가랑비가 아스팔트를 촉촉이 적시는 토요일 오전. 부슬거리는 빗속에 첫 방문지를 찾는다는 게 그리 상쾌한 일은 아니지만 ‘특별한 느낌의 사람들’을 만난다는 기대감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청담동에 자리잡은 ‘다음커뮤니케이션’.바로 인터넷 매니아의 눈길을 끌고 있는 예술 서버, Virtual Gallery를 만든 장본인들이다.
적당히 흐트러진 탁자, 반쯤 남은 커피 잔과 꽁초 가득한 재떨이, 프롬프트만 깜박인 채 키 펀칭을 기다리는 PC.. 그리고 제각기 널려있는 각종 집기들. 작업으로 인한 분주함과 그 뒤에 감도는 약간의 여유가 있다. 손님 맞을 준비를 하지 않은 분위기는 ‘부담 없음’이랄까. 편하기만 하다.
어젯밤 모두가 밤샘 작업을 한 탓인지 10시가 지나서야 모이기 시작한다(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출근 시간은 10시였다). 한 주 뒤에 기자는 다시 이곳을 찾았다. 좀 더 편한 느낌이었다. 지난주의 하늘과는 달리 머리에 내리꽂는 땡볕이 곧 태양의 계절이 옴을 실감케 한다.

[인터넷상의 예술공간 개설, 특별한 ‘느낌’ 재현]
‘다음커뮤니케이션’ 14명의 식구들은 요즘 밤낮을 분간하지 못하고 산다. 가상 갤러리 개설 이후 꾸준히 들어오는 웹 서버 구축 작업, 그리고 일반 기획전과 특별 기획전 등 정기적으로 바뀌는 예술 서버 프로그램 재구성 등등 일정이 빡빡하기 때문이다. 올해 설립된 걸음마 업체.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인터넷상의 문화공간, 가상 갤러리(Virtual Gallery) 때문이다. 이재웅, 박건희 두 사람이 공동 대표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은 20대 후반의 젊음과 패기, 열정이 모여 독특한 작품공간을 연출해내고 있다. 이들이 하는 일을 간단히 말하자면 인터넷상의 문화예술 정보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미 지난 4월 24일 본격적인 예술 서버를 가동, 첫 행사로 ‘박건희 Image, Image展’을 열었다. 기대보다 폭발적인 관심과 격려가 쏟아졌다. 130개국에서 동시에 관람 가능한 이 예술서버는 구축 후 공휴일을 제외한 최초 3주 동안 무려 6만 2327건의 접속 횟수를 기록하는 성황을 이뤘다.
서구에서 시작되었고 서양 문화 중심이던 인터넷에 ‘한국의 예술’을 소개해 우리의 존재를 세계에 알리고 우리의 문화를 심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이다. 한번은 가상 갤러리를 보고 영국의 Inter alia라는 문화예술 관련 계간지에서 박건희의 작품 4점을 홍보 차 사용하겠노라고 연락이 온 적도 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이 구축한 가상 갤러리는 단순한 그림 몇 점과 사진 몇 컷의 진열장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화랑을 단순히 네트워크상에 올린 것도 아니다. 거기엔 분명 어떤 ‘느낌’이 있다.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동경, 막연한 향수, 마음 언저리에 남은 대상 없는 그리움과 가슴아린 추억 연민…. 이들은 기존의 틀을 거부하고 특별한 ‘느낌’을 담아내려 한다. 그 속에서도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인의 한’과 ‘우리의 정서’, 그 바닥을 흐르는 ‘휴머니즘’이다.

” 인터넷은 시공을 초월한 작품교류는 물론이고 문화예술의 공감대 형성을 위한 최상의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파리 대학식당에서의 운명적인 재회, 예술과 인터넷의 접목 시도]
다음커뮤니케이션이 만들어진 배경을 들여다 보자. 93년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의 이재웅과 박건희 두 사람의 운명적인 재회가 없었다면 가상 갤러리와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없을 것이다. 유학 중이었던 두 사람은 프랑스 파리 내 대학 식당에서 만난다. 둘은 이미 영동고등학교 동창이었기 때문에 초면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렇게 먼 곳에서 다시 만날 줄이야.
예술 분야에 대해서는 무지하지만 관심은 많던 이재웅, 컴퓨터에 대해서는 지독한 ‘컴맹’이고 인터넷은 완전초보인 박건희. 그 날 이 둘의 만남이 있게 한 것은 다음커뮤니케이션과 버추얼 갤러리를 위한 운명의 여신 클로토의 미소 때문이었다.
박건희는 93년 9월 프랑스 에꼴 드 보자르에 스페셜 아뜨리에 과정을 밟기 위해 유학길을 떠난다. 사실 그는 무료한 일상을 깨고 싶어 아프리카로 가고자 했다. 지구 반대편에 가서 살고 싶은 생각은 아프리카로 가는 통로이자 전초 기지인 파리에 머무르게 했다. 고독과 소외감을 정당화 할 수 있는 공간, 아무도 없는 곳의 매력, 아프리카는 바로 그런 요소를 지니기에 충분한 곳이었고 박건희에게 파리는 아프리카로 가는 비상구나 다름없었다.
“인터넷은 시공을 초월한 작품교류는 물론이고 문화예술의 공감대 형성을 위한 최상의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박건희에게 이재웅은 컴퓨터와 통신분야에 스승이나 마찬가지다.
89년 비트넷을 쓰면서 인터넷을 접한 이재웅은 93년 2월 대학원 졸업 후 같은 해 8월 프랑스 ENS에서 ‘인지과학’ 박사과정을 밟으러 유학길을 떠났다. 파리에 머무른 기간은 1년 5개월. 집안에서 알면 청천벽력 같은 일이지만 결국 만사 제치고 박건희와의 모종의 음모(?)를 결심한다. “인터넷은 더 이상 전산인의 분야가 아닙니다. 현재 국내의 인터넷 활용은 10%도 채 안되고 있죠. 인터넷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요. 유학 시절 우리나라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더 했지요. 프랑스의 경우 미술 음악 영화 등 문화 예술 공간이 거의 생활 속에 깊숙히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잖아요. 기술과 예술이 만나 문화공간을 가장 적절히 표현, 다수의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을 찾았죠. 웹의 응용분야로 가장 적합한 것이 가상 갤러리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노틀담. 몽빠르나스 오가며 막연한 감을 구체화. 서울로 가자!

노틀담 성당 옆 박건희의 작업실과 몽빠르나스 근처 이재웅의 자취방을 오가며 둘이 나눴던 막연한 ‘感’은 점점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결국 사고를 치기에 이른다. 94년 12월 24일. 그 날은 이재웅과 박건희에게는 잊을 수 없는 운명의 날이다. 둘 다 다니던 학교에 달랑 편지만 남겨놓고 무작정 귀국해버린 것이다. 이들은 서울에 오자마자 곧 사무실을 얻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이왕에 구상한 괜찮은 아이디어를 머무적거릴 필요는 없었다. 돈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95년 3월 청담동 사무실을 얻어 초기자본 5000만원을 가지고 함께 일할 일꾼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했다. 기획제작팀과 연구기술팀으로 나뉘는 조직 구성은, 큐레이터를 비롯해 사진이나 그림을 전공한 아티스트들은 박건희의 선후배나 친구들을 중심으로 모았고, 전자공학이나 전산 등 시스템기술 분야의 엔지니어들은 이재웅의 주변을 중심으로 쓸만한 인물들을 모으기 시작했다.돈을 많이 주기 때문이 아니다. 명예가 보장되기 때문도 아니다. 밤샘작업을 밥먹듯 하는 곳인데 마냥 편하기 때문에 선택한 것도 아니다. 이들이 모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모두가 젊음을 바탕으로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과 기술의 만남이 이뤄낼 절묘한 문화공간을, 더 많은 이들이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도록 하자는 마음에서 얼굴을 맞대기로 한 것이다.

[고정관념을 깬 새로운 시도, 차세대 감각ㆍ다양한 음의 조화 이루고파]
다음커뮤니케이션의 ‘다음’이 뜻하는 의미 중 하나는 Next이다. 통신 환경뿐 아니라 모든 사고와 행동방식, 생활양식에 있어 Next를 말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다양한 음을 조화롭게 내보자 하는 뜻의 ‘다음’이다.
이들의 강점은 멀티미디어 아티스트와 전산 전공자가 합쳐진 탄탄한 집단이라는 점이다. 구성원들의 회사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며 순발력 있는 조직임을 자랑한다. 인간이 지녀야 할 기본적인 덕목을 지켜 나간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믿는 그들이다. 그들은 휠지언정, 부러지고 싶지는 않다. 이들의 꿈은 20~30대 안팎의 순발력 있고 신바람 나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제1회 특별기획전으로 박건희 이미지전 이외에 지난해 타개한 故 임석제 사진전을 지난 5월 22일부터 가진 바 있고, 일반 개인전으로는 얼마전 압구정동 서미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진 구본창 사진전 ‘숨, 살아있음에 남겨진 환희’를 5월 27일부터 가상갤러리를 통해 볼 수 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의 ‘다음’이 뜻하는 의미 중 하나는 Next이다. 통신 환경뿐 아니라 모든 사고와 행동방식, 생활양식에 있어 Next를 말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다양한 음을 조화롭게 내보자 하는 뜻의 ‘다음’이다.

이들은 매월 1~2작품씩 선정, 특별기획전을 갖는다. 일반개인전이나 그룹전과는 달리 이슈가 될 만한 아이템을 신중히 선정, 사장된 개인의 작품세계를 인터넷상에서 재현하고 있다. 가급적이면 기존화랑에 나와 있는 중견 작가들의 작품보다는 새로운 시각의 신진작가들의 작품,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기준을 세우고자 고심 중이다. 특별 기획전을 구상할 때에는 평론가들의 의견이나 자문단체의 견해를 참조하기도 한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작가나 예술가를 위해 사이버 스페이스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실제 공간과 링크시켜 보고자 한다. 아직은 작가나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세계를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서로의 느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오픈된 최적의 공간이라는 것을 계속 알려나갈 것이다. 인터넷 교육을 시키고 오픈된 인터넷 사용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싶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가상 화랑을 통한 전시 후 미술협회나 화랑협회 등의 데이터 베이스 구축도 담당할 계획이다.

글. 송혜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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