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개, 2023
artist statement
우울은 내부의 진절머리나는 운동들 때문에 외부로는 무기력해지는 것이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게 아니다.
아침이 가장 힘들었다. 일어나기 싫음과 일어나기 싫음을 힐난하는 마음이 엉켜 뒹굴었다. 무기력과 무가치함에 덮여 겉으로는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매일 아침 저 밑에서 얄궂은 알갱이들이 자글자글 운동하며 새어 나왔다. 입안을 까슬하게 만들고 귀를 가렵게 하고 눈을 침침하게 했다. 침대에 붙어서 눈을 겨우 뜨면 저 멀리 내 손이 보였다. 너무 멀어서 움직이라는 명령이 닿지 않을 것 같았다. 다시 침대 바닥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하나의 행성만큼이나 무거운 침대의 중력장에서 벗어나는 일. 내 우울함이 매일 아침 내게 툭 던져 준 제일 힘든 일이었다. 우울의 증상이 신체화되면서 감각의 범위가 일그러지는 것 같았다. 쇳가루가 자석 주위에 곡선을 만들 듯 우울 알갱이가 내 몸의 입, 눈, 귀, 수많은 구멍을 관통하고 지나가 감각의 공간에 폐곡선을 그렸다.
아침이 또 왔다. 누운 채로 배가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을 느끼면서 숨을 쉰다. 들이마시고 내쉬고, 들이마시고 내쉬고. 복근에 힘을 주고 상체를 침대에서 떼어냈다. 두 발을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이제 반은 했다.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침대에서 완전히 떨어졌다. 주방으로 갔다. 아직 눈알이 눈꺼풀에 서걱거린다. 찬장에서 약 봉투를 꺼낸다. ‘아침’이라는 글씨가 박힌 약봉지를 뜯었다. 코팩사엑스알서방캡슐 37.5mg과 산도스설트랄린정을 물과 함께 삼켰다. 하품으로 말라 있던 눈도 적셨다. 아직 밥맛은 없어 바나나를 하나 까서 먹었다. 커피 한 잔 사러 가보자 마음먹는다. 한산한 골목을 걸으면 기분도 좀 나아질 것이다. 이런 것들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다.
항우울은 낯선 감각의 중력에서 점차 거리를 두는 것이기도 했다. 나의 몸과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고 나의 시선을 끌었던 공간과 장소를 거닐기 시작했다. 차츰 우울에서 벗어나면서 한편으로 우울이 낯선 영역으로 기분과 감각이 끌려갔다 온 경험의 확장이기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을 대했던 일련의 과정은 모래언덕에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듯 내가 발 딛고 있는 곳을 살피고 그에 따라 자신과의 거리를 잘 가늠하면서 가는 것이었다. 우울은 단지 마음이 아픈 것만 아니라, 정상의 범위에서 겪지 못했던 나의 감정과 상처를 살피고 다시 감각하며 또 다른 삶으로 이끄는 이상한 끌개 일지도 모른다.
김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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