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붉은 틀 Red House, 2005
artist statement
우회로
북한은, 나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기억의 온갖 군데에 자질구레한 파편을 공급해 왔다. 그곳은 금기이자 호기심이었으며, 이상한 나라였고, 심지어는 거울이었다. 아마도 북한의 ‘어떤 나’ 역시, 남한에 관한 자질구레한 기억을 안고 살아오지 않았을까 나는 상상한다.
모든 사진은, 결국 과거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사진기에 담지 않은 기억 속의 장면까지 보여줄 수는 없다. 나는 비교적 ‘오늘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점에서 북한에 관한, 많지도 적지도 않은 장면을 수집해 왔다. 그리고 이것들을 정리하면서 얼토당토않은 세 개의 장으로 분류를 시도해 보았다. 순전히 자의적이며,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관념의 발현임을 먼저 실토한다.
1장 ‘펼쳐 들다 – 질서의 이면’은 북한 사회가 보여주고 싶은 장면의 일단을 제시한다. 일사불란하고 화려한 단결이 춤을 춘다. 북조선식 종합예술의 긍지와 신념, 경이가 펼쳐진다. 나는 부제를 ‘질서의 이면’이라고 달았는데, 그것은 숨은 그림 찾기로 드러나는가 하면, 모습을 저 너머에 감추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사진은 질서의 표면을, 그것도 매우 협소하게 보여주므로, 이면을 읽어내는 건 그대의 몫이다.
2장 ‘스며들다 – 배타와 흡인’은 북한이라는 공간을 보여줌과 동시에, 나와 비슷하거나 다른 목적으로 그 공간을 탐색하는 이들의 풍경을 담고 있다. 남한사회에서 이제 사진기는 사회 구성원임을 증명하는 신분증의 역할을 하는 듯하다. 북한을 방문하는 1백 명의 이방인들이 1백 개 이상의 사진기를 소지한다는 사실은, 이들이 북한 공간에서 가장 왕성하게 벌이는 활동 가운데 하나가 사진 찍기일지 모른다는 예견을 가능케 한다. 실제로도 그렇다. 각자의 사진기는 기념, 이해, 경험, 감시, 정보수집의 다양한 차원에서 대상을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이는 모종의 의식儀式이기도 하다. 게다가 사진기는 외부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내부인들 역시 이러한 의식에 동참한다. 가끔 사진기는 상대방에게 건네져 우호와 기념의 정을 나누는 가교의 역할마저 담당한다. 이때 서로는 기꺼이 상대방의 사진사가 되어준다.
언제라도 다시 올 수 있는 곳이라면, 거룩한 의식을 잠시 미룰 수도 있으리라. 허나 북한 방문은 늘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경험법칙을 상기시킨다. 그러므로 ‘찍는 의식’은 미룰 수 없는 의무이자, 이 금단의 땅을 밟았다는 유일하고 거부할 수 없는 증인이 되어줄 것이므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 된다. 잠시 상상해 보자. 이런 곳에서 사진기를 들이대지 않는 자는 얼마나 생뚱맞을 것인가. 냉전시기 수전 손택은 중국을 방문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당신은 왜 찍지 않느냐”는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이런 곳에서 사진은 그냥 ‘찍는 것’이 아니라, ‘찍어야만 하는 것’이 되고 만다. 나는 2장을 통해 북한이라는 낯선 시공간을 제시함과 동시에, 그 낯선 공간에 스며든 이들이 취하는 행동양식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각자의 사진기에 담긴 장면들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또 어떻게 공유되고 유포되고 기념되었는지는 그냥 상상해 볼 뿐이다.
3장 ‘말려들다 – 전복된 자기모순’은 북한이라는 거대 상징이 남한에서 어떻게 재현, 제시되는가에 대한 관심을 담고 있다. 이는 몇 년 전 전시와 출판으로 내놓은 바 있는 ‘분단의 향기’ 연장선이기도 하다. 이 장면들은 아마도 북조선으로서는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향취를 풍길지 모른다. 하지만 이 장면들 속에 뭔가 논의의 지점이 꿈틀대고 있을지 모른다고 나는 생각해 왔다. 간단치 않은 고민과 과제가 숨어있다. 눈을 질끈 감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면,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어떤 시작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의심의 자유
어쨌든, 이 작업은 ‘북한 바라보기’다. 전적으로 북한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정면성을 취하지만, 사실은 우회로였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북한이라는 우회의 길을 걸어, 내가 서 있는 곳은 결국 ‘남한’이고, 고민들이 똬리를 틀고 있는 지점 역시 ‘남한’이다. 나는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번 작업의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너는 나의 거울이며, 나 또한 너의 거울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너 보기는 나 보기이며, 나 보여주기는 너 보여주기다. 북한 바라보기는 결국 남한 바라보기일 수밖에 없다.
사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대단치 않다는 것을 안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고민의 실마리는 되어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아직은 남아있다.
다시 수전 손택의 말을 다시 음미해본다.
“우리가 세계를, 카메라가 기록한 내용 그대로 받아들일 때, 그것은 우리가 사진을 통하여 세상을 알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실은 ‘이해한다’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이해한다는 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데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해의 가능성은 ‘NO’라는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엄격하게 말해서 사람들은 단 한 장의 사진으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가 없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는, 의심할 수 있는 자유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은, 의심할 수 있는 능력이다.
노순택, NOH Suntag
[개인전]
2010 좋은, 살인 really Good, murder, 상상마당, 서울
2010 성실한 실성 Lunatic Fidelity, 고은미술관, 부산
2009 Estat d’excepció, La Virreina, Barcelona, Spain
2009 새 Appropriating Reality, the Room at Total Museum, 서울
2008 비상국가 State of Emergency, Württembergischer Kunstverein, Stuttgart, Germany
2007 붉은 틀 Red House, 갤러리 로터스, 파주
2006 얄읏한 공 The StrAnge Ball, 신한갤러리, 서울
2004 분단의 향기 Smells like the division of the Korean peninsula, 김영섭화랑, 서울
[그룹전]
2010 Re-Designing the East, Württembergischer Kunstverein, Stuttgart, Germany
2010 미디어시티서울 ‘Trust’,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10 MISSING, Robert Goff Gallery, New York, USA
2010 죄악의 시대, 대안공간 루프, 서울
2009 90년대 이후의 새로운 정치미술 ‘악동들 지금, 여기’, 경기도미술관, 안산
2009 Alogon Affair, 학고재, 서울
2008 39조2항, 아트선재센터, 서울
2008 한국현대사진 60년 1948-2008,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08 Heartquake, Socio-Political Contemporary Art Museum, Jerusalem, Israel
2007 뻥화론, 쌈지스페이스, 서울
2007 민중의 고동 – 한국 리얼리즘 미술 1945-2005, 반다이지마 미술관, 일본
2007 전쟁표면, 평화박물관, 서울
2007 Landschaft – Entfernung, Württembergischer Kunstverein, Stuttgart, Germany
2007 ‘정치 디자인, 디자인의 정치’, 제로원디자인센터, 서울
2006 친숙해서 낯선 풍경, 아르코미술관, 서울
2006 On Difference #2 + middle corea, Württembergischer Kunstverein, Stuttgart, Germany
2004 The Persisting Moment, P.S.1 MoMA, NewYork, USA
2004 리얼링 15년, 사비나미술관, 서울
[출판]
2010 좋은 살인, 상상마당
2008 State of Emergency, Hatje Cantz, Germany
2007 Red House, 청어람미디어
2005 분단의 향기, 도서출판 당대
[목록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