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rnal Recurrence, 2010-2021
artist statement
휩쓸리고 있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거대한 흐름에 굴종하고 체념하고 말았다. 무기력한 나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그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한 채 삶을 견뎌내고 있었다. 많은 후회와 걱정이 순간과 지금을 살고 있지 못함을 드러냈다. 산다는 것은 고달프고 허무와 권태로 얼룩진 일상이 끝없이 되풀이될 뿐이라며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렇게 병명도 알지 못한 채, 어쩌면 아픈 것도 모른 채 내면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사진을 매체로 아름다운 순간, 흔히 말하는 결정적 순간을 좇던 시도와 노력은 무의미한 것이었을까. 셔터를누르자 순간이 조롱하듯 내달렸다. 인식과 동시에 순간은 지나간 현재, 곧 과거가 된다. 영원히 순간도 지금도 살아갈 수 없는 것은 아닐까. 붙잡아둔 순간은 영원이 되지 못하고 단지 어떤 과거의 한 시점을 지시하는 그럴듯한 좌표에 불과한 건 아닐까. 그리고는 내가 담은 모든 사진이 하찮게 느껴졌다.
사진에서 시간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세계 각국의 오후 3시에는 동시성이 결여되어있다. 공간에 대한 전제없이 시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공간 좌표를 언급하지만, 시간 정보를 지워낸다면 어떨까.1 반대로 구체적인듯 하지만 불완전한 시간(시, 분, 초)을 표기하고 위치 정보를 가린다면?2 시공간 정보가 불명확해지면 사진 매체의 객관성/사실성은 너무도 쉽게 훼손되고 만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객관적이고 사실적이라고 여겨질 어떠한 외적 사건이 아닌 대상을 인식할 때의 ‘순간적 동기’와 셔터를 누르는 ‘실존적 결단’ 에서 섬광처럼 피어난 이미지가 그것이다.
첫 체험은 우연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평범한 날 집을 나서며 담은 한 사진 속 선명한 두 글자3에는 내 외마디 절규가 오롯이 새겨져 있었다. “아파!” 그것은 찰칵 소리와 함께 내 안에서 울려 퍼진 시퍼런 비명이었다. 내가 아프다는 것을, 삶에서 무언가 잘못되어감을 느끼면서도 애써 무시했던 건 아닐까? 병을 알면 그제야 치료가 시작되는 법이다.
셔터를 누르는 행위는 세상을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결단의 순간으로 전환되었다. 이 순간은 과거와 미래라는 두 영원 덩어리가 내 안에서 사정없이 충돌하는 때이고, 새로운 우주가 깨어나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최초이자 최후의 동력이다. 달리 말해서, 이 실존의 순간은 ‘그랬었다’와 ‘그러겠다’를 모두 아우르며 그 어떤 시공간 좌표도 필요로 하지 않는 그 자체로 영원한 순간이다. 현재에 자기를 위치시키는, 자신을 마주하는 이 관계의 순간에 내 실존은 증명된다. 후회와 걱정, 끈적한 염세라는 중압감에서 벗어나 순간을,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연작 ⟪Eternal Recurrence⟫는 시공간을 다룬 지난 두 연작을 계승하고 종합한다. 인식 여부에 따른 시공간의 불확정성과 영원적 순간에 관한 탐구에 덧붙여, 필름 카메라의 데이터백4을 이용해 임의의 시간 정보를 필름에 직접 입력하는 것으로 공간을 전제하는 시간이 상대적 개념임을 보일 것이다. 나아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마주하는 결단을 통해서야 창조하는 삶을 살 수 있으며, 이상 세계가 아닌 지금, 여기에서 생의 치유를 실현할 수 있음을 알리고자 한다.
1 연작 ⟪Time Traveller⟫ : https://50bell.com/time-traveller
2 연작 ⟪Nowhere, Everywhere⟫ : https://50bell.com/nowhere-everywhere
3 작품 ‘아파!’ 이미지. 다음 페이지 참고
4 데이터백 (Data Back) : 필름 촬상면 또는 가장자리 여백에 날짜 또는 시간 정보를 물리적으로 기록하는 장치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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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정 평론가]
50BELL
[개인전]
2023 Colour Mixing in Jeju: Island’s Time within Colours, 큰바다영, 제주
2021 50BELL’s Guide: Beyond Perspective, 예술공간 이아, 제주
[그룹전]
2023 Curator’s Room: Waves, 오션 스위츠 호텔, 제주
2022 성읍새김, 성읍민속마을, 제주
2021-2022 Thoughts We Live By, 예술공간 이아, 제주
2021 예술주간 오픈스튜디오, 예술공간 이아, 제주
2021 Silver Lining, 새탕라움, 제주
2020 Day Dream, 갤러리 세바, 제주
[레지던시]
2021 예술공간 이아,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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