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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8(강이식 장군의 묘비 기단석)

    009(강이식 장군의 묘비 기단석)

    018(나통산성에서 만난 사내)

    019(나통산성에서 만난 여인)

    020(낭낭산성)

    022(고구려의 땅)

    023(의무려산의 고려성)

    024(백암산성)

    025(백암산성의 겨울)

    033(백암산성에 뜬 초승달)

    035(안시성을 찾아서-2)

    036(안시성을 찾아서-1)

    037(집안의 호태왕릉)

    038(오골성 북문에서 바라 본 풍경)

    045(충주 중원 봉황리 마애불)

    048(집안의 고구려 무덤떼)

    049(환도산성)

    051(환인의 상고성자의 무덤)

    태왕의 증언-고구려, 2017

    artist statement
    고구려를 생각하며
    일찍이 대륙을 호령하며 한민족의 기상을 떨치던 국가들이 있었다. ‘배달 한국’과 ‘단군조선’을 비롯한 상고시대의 주역들이다. 이들의 얘기는 우리들의 무관심으로 아득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 뒤를 이어 달려온 또 하나의 제국이 있었으니 우리는 그를 ‘고구려’라 말하고, 적어도 한국인이라면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고구려에 관하여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어린 시절부터 학교에서 배워 온 얄팍한 역사 지식이 고작이다가, 최근 시절이 좋아지다 보니 만주 벌판에 흩어져 있는 대표적 유적지 몇 곳에 점을 찍고서는 다 아는 양 어쩌고 저쩌고 떠들어 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고 그 기록조차 세월이 흐르면서 왜곡되고 멸실되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역사의 진실은 묻히고 허구가 판치는 세상에서 위선자들이 의기양양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기에 우리들의 역사 인식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내 안의 무언가가 꿈틀거리더니 정말 그 고고한 천명(天命)을 받들어 한민족의 상고사를 추적해가는 작업이 시작되었고, 그 일환으로 ‘고인돌’과 ‘발해’에 이어 ‘고구려’를 정리하기에 이르렀다. 다 아는 것처럼, 고구려는 1,400여 년 전에 사라진 제국이지만 옛 단군조선의 영토를 확보한 뒤 동방역사에서 주역을 담당했던 강대한 기마민족 국가였다. 하지만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고구려’라는 나라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고려(高麗)’가 있을 뿐이다. ‘코리’ 또는 ‘가우리’라고 불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사실은 고대 문헌과 유물들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 유적이 남아있는 만주 곳곳에는 ‘高麗(가우리)’라는 마을 이름들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에서도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다만, 훗날 왕건이 세운 ‘고려(高麗)’와 구별하기 위해 ‘고구려(高句麗)’라 표기한 것이 지금 이렇게 굳어지고 만 것이라 생각되기에 편이 상 그대로 부르기로 한다.

    이름만 들어도 힘찬 기상이 느껴진다는 고구려는 북쪽 대륙에 기반을 둔 고대국가다 보니 분단된 조국의 현실과 이념의 차이에서는 그 흔적조차도 접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식민사관과 사대주의 사상의 주입식 교육에 의심 없이 매달려왔지 않았던가. 오래전 고구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의문은 시작되었다. 어처구니없게 들릴지 모르지만, ‘고구려는 정말 한민족의 혈통인가?’로부터 ‘마지막 수도였던 평양은 과연 지금의 어디인가?’, ‘안시성은 어디에 있었고 서쪽 끝 고구려의 강역은 어디까지였는가?’ 등등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20여 년 동안 기존 지식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만주 벌판을 누벼왔다. 버려진 산성을 찾아 가시덩굴 속에서 사투를 벌이기 일쑤였고, 칼바람 부는 성벽에 올라 유유히 흘러가는 강줄기를 보면서 넋을 놓거나, 이끼 낀 돌멩이들만 뒹굴고 있는 고분 앞에서 시공을 넘나드는 교감을 이루고자 했다. 하나, 둘 새로운 사실에 눈을 뜨게 되면서 우리들의 고정관념 즉, 잘못된 교육과 인식이 큰 장애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아직껏 뭐 하나 시원하게 풀린 것은 없다. 그야말로 사분오열이다.

    고구려의 흔적들은 한반도의 중부인 중원의 ‘고구려비’가 최남단의 영역이었음을 말해주고 있고, 한강 유역에 성채 흔적들도 남아 있기는 하지만 주로 만주 벌판 곳곳에 흩어져 있다. 우리를 놀라게 한 호태왕 릉과 비 그리고 장군총을 비롯한 주된 것들이 압록강변의 ‘지안(集安)’에 집중되어 있어 그 제국의 위상을 짐작케 하지만 이들을 제외한다면 남아 있는 것이라곤 거의가 산성들뿐이다. 그것은 1,400여 년의 긴 세월이 흐르기도 했지만 그 광활한 영토가 우리 민족의 영역 밖으로 밀려나게 되었다는 것과 패자의 역사로 인식되어 그만큼 우리 조상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잊혀진 존재가 되어 왔다는 것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애석하고 우려스러운 것이 어디 그뿐이던가. 지금에 와서 그 영토에 무슨 미련이 있겠는가마는 적어도 빼앗긴 역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래전에 호태왕 비문을 보고 있을 때 있었던 일을 잊을 수 없다. 지금은 유리로 갇혀있지만 그때만 해도 훨씬 자유롭게 관찰할 수 있었다. 어린이를 동반한 한 중국인 가족이 내 곁에서 구경하고 있었는데 애들 아빠가 가족들에게 이 비석이 옛 조선 왕의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자 곁에서 듣고 있던 엄마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말했다. “거 참 이상하네! 옛 조선 왕의 것이라면 조선글로 써놔야지 왜 우리 글로 써놨지?” 그러자 애들 아빠는 생각지도 않는 질문을 받아서인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물론 중국말로 하는 것이었지만 걸음마 단계에서도 알아들을 수 있어 그 말도 안 된 질문이 나를 깜짝 놀라게 했고 많은 것을 생각게 했다.

    만주 벌판에 남아있는 고구려 산성들은 대략 50여 곳이라 한다. 주로 북에서 남서쪽으로 뻗어있어 그 천리장성의 목적이 어디에 있다는 것을 짐작게 한다. 가장 북쪽에 있는 것이 지린(吉林) 시에 있는 ‘용담산성’인데 지금은 공원의 산책로가 되어 있다. 그 밑으로 ‘성자산산성’이 있는데 원 이름은 ‘부여성’으로 상당한 규모지만 심산유곡의 낙엽들에 묻혀서 당태종이 고구려를 침략해 오면서 잠시 이곳에 들렸다는 얘기만 전해지고 있다. 이들은 부여시대에 쌓았던 것들인데 훗날 고구려에 흡수된 것들이다. 그 많은 산성들을 다 찾아 나서기는 아직까지는 역부족이지만 그래도 주요 산성들과의 교감은 마친 셈이다. 가장 좋은 상태로 남아있는 곳은 ‘백암산성’인데 현지에서는 ‘엔쪼우성’이라 부른다. ‘태자하’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마주하며 성벽 위에 서 있노라면 저절로 눈물이 나는 곳이다.

    또한 최고의 요새는 ‘오골성’이다. 현지에서는 ‘봉황산성’이라 부르는데 기암 절벽의 봉황산과 맞은편 고려성자산 사이에 자리한 이곳은 수십만의 군대가 주둔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평지 공간이 있고, 밖으로 통하는 남문과 북문만 잘 지켜내면 안전한 천연의 요새다. 인공적으로 쌓은 성벽만 해도 7km가 된다고 하니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쳐들어 왔을 때 후방 지원 임무를 맡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이 오골성 이야말로 그 유명한 ‘안시성’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조선시대 ‘열하일기’를 집필한 박지원이 이곳을 지날 때 까지는 이곳이 안시성으로 인식되어 왔다가 여러 문헌의 기록에 의거하여 안시성이 아니라고 그가 주장한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는데 좀 더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다. 지금도 이 성 안에 ‘고성리’라는 마을이 있어 만주족들이 살고 있는데 이들 또한 고구려의 후손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친근감에 젖다 보니 집안으로 초대받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술 몇 잔에 취하고 또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잃어버린 역사를 찾고 그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마음은 굴뚝같지만, 분에 넘치는 것이기에 역사 연구의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의 본분인 현장성에 중점을 두고 작업에 임해왔다. 결국 학술적 차원이 아니라 예술적 또는 기록적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이 내 몫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 까지도 심안으로 찾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마음은 날마다 허허벌판에 서 있는 것이다.

    대륙을 지배하던 고구려는 자존심이 강한 나라였다. 수(隋), 당(唐)을 비롯한 여러 외세의 굴욕적인 외교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왔지 않았던가. 그것은 이민족을 끌어안으면서까지 진정으로 백성들의 화합을 이루어 낸 결과 일 것이다. 또한 백제와 신라를 대하면서도 다툼은 있었지만 항상 같은 핏줄이라는 것을 잃지 않았다. 이는 호태왕의 비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외세를 끌어들인 신라(新羅)에 발등 찍히고,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영원한 제국은 없을뿐더러 역사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라지만, 이때의 잘못 풀린 역사로 인해 지금껏 우리 민족의 힘찬 기상이 길을 잃고 있어 아쉽고 또 아쉽다.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 앞서 무엇을 느끼게 할 것인가에 주안점을 두었고, 우리가 모른 무언가가 있어 영혼들이 구천에서 아직껏 맴돌고 있다면 그 서러움에 대한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또 이야기는 있지만 눈앞에 남아있는 것이 없어 아쉬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았는가. 여기 있는 것들이 그렇다. 미진한 것이 있다면 그건 아직까지의 내 역량 밖이다. 역사는 항상 되풀이된다고 했다. 이제 과거의 꿈을 통해 미래의 꿈을 키워나가야 한다. 병신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미흡하지만 고구려의 기상을 본받아 꺼져가는 민족정기의 불씨를 살리는데 일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기록된 역사는 거의가 승자의 편에 서있다고 하지만 사실 인간의 역사에서는 승자가 따로 없고 항상 미완성으로 이어가고 있다. 잊혀지고, 왜곡되고, 사라져 가지만, 하늘은 그 진실을 기억하고 있다. 고구려는 결국 영원히 ‘하늘이 기억하는 제국’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이를 ‘天年의 제국’이라 부르면서 위기에 처한 한민족의 각성과 도약을 꿈꾸어 본다.

    檀紀 4349년 병신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박 하 선

    ** ‘天年의 제국’은 제가 지은 신조어입니다.
    (하늘에 기록되어 있고, 하늘이 기억하고 있다는 의미)

    박하선, Park Ha-seon

    1954년 광주 출생

    [개인전]
    2018 인간을 보다, 스페이스22, 서울
    2017 태왕의 증언 고구려, 광주시립사진전시관, 광주
    2009 천장 초대展 (서울 M갤러리, 서울 포스갤러리)
    2007 천불천탑(The Unjusa temple Valley of Mysteries), 출판기념 운주갤러리 초대, 완주
    2003 지구촌 리포트 슬라이드 쇼 ‘Afghan & Iraq Now’ (광주, 서울)
    2000 갤러리 룩스 기획 ‘문명의 저 편’ 초대展 (서울 갤러리룩스, 광주 무등예술관)
    1999 삶의 중간 보고서, 광주 롯데화랑, 광주
    1994 왕오천축국展, 광주 조흥문화관, 광주
    1992 광주 MBC 특별기획 ‘서역’ 초대 개인展, 광주 남봉미술관, 광주
    1991 월간 ‘사람과 산’ 창간 1주년 기념 ‘티벳’ 초대 개인展, 동숭아트센터, 서울
    1990 실크로드, 남봉미술관, 광주
    1984 바다, 부산 사인화랑, 화니미술관, 광주
    1980 대양, 남도예술회관, 광주

    [그룹전]
    2010 리얼리티 리더스 클럽 멤버展, 환경을 보다, 토포하우스, 서울
    2008 리얼리티 리더스 클럽 멤버展, 서울 M갤러리, 서울
    2008 한국현대사진60년展,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08 운주사 천불천탑, 광주 신세계갤러리, 광주
    2008 5월의 서곡展, 광주시립미술관, 광주
    2007 한일국제교류展, 하우제미술관, 도쿄, 일본
    2006 포항아트페스티발, 포항문화예술회관, 포항
    2006 사람. 사람들 (서울 인사아트, 서울 갤러리NOW, 갤러리 눈)
    2006 제1회 대구사진비엔날레 다큐멘터리 사진속의 아시아, 대구
    2006 앵글의 휴머니티, 광주시립미술관, 광주
    2005 제1회 광주이미지월드 ‘아시아의 빛’ 멀티슬라이드 쇼, 광주
    2005 광복60년. 사진60년 시대와 사람들, 마로니에미술관, 서울
    2004 우리시대 10人의 풍경, 의재미술관, 광주
    2004 동강사진대展, 강원도
    2003 한국 사진의 탐색, 경인미술관, 서울
    2001 眞 언더그라운드, 광주 롯데화랑, 광주
    2001 포토 저널리즘 페스티벌 World Press Photo Korean Award, 포토아이갤러리, 서울
    2001 2001 World Press Photo 수상작 세계 순회展
    2001 백제의 바람, 갤러리 찬, 쿄토, 일본
    1999 대한민국 환경사진대展,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1997 지역작가 초대展, 인데코화랑, 서울
    1994 한국사진의 현단계 (서울, 제주, 광주)
    1994 사진94 한국인, 인데코화랑, 서울

    [수상]
    2001 World Press Photo Award 스토리 부문 수상 (Daily Life Stories-Skyburial in Tibet)

    [출판]
    2017 太王의 증언
    2014 住
    2012 발해의 恨
    2011 오래된 침묵
    2009 생명의갯벌
    2007 천불천탑
    2005 문명 저편의 아이들
    2002 天葬
    1999 삶의 중간보고서



    [목록으로]
    • 박하선 – 인간을 보다, 2018
    • 박하선 – 떠나고 만나고,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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