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장, 2009-2012
artist statement
단일민족, 백의민족의 동질성에 자긍심을 갖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국경을 넘는 이주가 보편화되고 새로운 사회구성체가 형성될수록 우리의 의식은 완고하리만큼 배타적 경계를 유지한다. 뿌리 깊은 ‘민족주의’ 때문이다.
우연히 ‘외국인 주부 한글 교실’에 참석하는 기회가 있었다. 외국인 주부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자연스레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유도하는 다문화 정책 프로그램이었다. 외국인 주부 대부분은 동남아시아에서 온 결혼이주민이었다. 우리와 다른 외모, 어눌한 발음은 타 문화권 출신임을 나타내는 강력한 표식이고, 어린 나이에 맞지 않게 어둡고 무표정한 얼굴은 그녀들의 공통된 모습이었다.
우리 사회의 부정적 시선에 쉽사리 동화되지 못한 그녀들은 자신의 특수한 삶의 방식을 존중받지 못한 채 그 경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낯선 땅, 낯선 문화, 낯선 사람과 모호함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야 하는 소수자의 불확실성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그녀들의 정체성을 한 장의 사진으로 기록하기에 이른 지점이다.
급속한 경제 발전은 우리 사회뿐 아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기피하는 사회 분위기와 상대적으로 비싼 임금은 동남아시아의 풍부한 노동력을 불러들이는 계기가 되었고, 남아선호 사상에 의한 남녀 성비 불균형은 외국인 신부를 맞아들여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독일 간호사 파견, 기지촌 여성 문제, 아메리칸드림 등 과거 우리 사회가 겪을 수밖에 없었던 아픔과 정반대의 입장에 선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다.
이 작업의 큰 틀은 우리 사회의 가장 당면한 과제인 국가, 민족 등을 포괄하는 다문화주의지만, 세부적인 작업의 의도는 우리 사회와 아시아에 속한 제3세계권 여성의 ‘결혼’ ‘이주’ ‘가족’ 그리고 ‘그녀들의 정체성’이다.
인간은 관습화 되고 사회화된 결혼 제도를 통해 생리 본능, 즉 자신의 유전자를 영속시킨다. 하지만 배우자를 선택할 때는 생리적 욕망뿐 아니라 ‘심리적 이끌림-사랑’이라는 감정 변화가 중요한 작용을 한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혼은 사회적 관습의 영향을 많이 받지만 기본 전제는 사랑이다. 그러나 사진 속 주인공들은 사랑해서 결혼한 경우가 드물다. 10~20분의 짧은 대면으로 아내이자 아이의 엄마가 될 사람을 결정하고, 평생 자신의 삶을 의지할 남편을 결정한다. 한순간의 운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결혼의 형태가 우리 사회에 새로운 가정의 유형을 만들고 있다.
‘다문화 가족’은 우리 사회 급격한 변화 과정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 최근 한국 사회는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다양성과 차이를 포괄하는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다. 정부에서도 단일민족이라는 민족주의의 사고 틀을 넘어 시대의 흐름이 된 세계화에 부응하는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우리의 의식과 사회 구조는 여전히 진부한 관념에 갇혀 있다. 이주민들을 피부색이 다른 이방인으로 범주화하고 다문화 정책 역시 그들을 소외시킬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화를 통한 경제력 상승은 이주노동자와 함께 결혼이주민을 받아들이는 근본 이유가 된다. 동남아시아에서 온 결혼이주민들은 빈곤을 탈피하는 방편으로 결혼을 선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족을 위해 또는 자신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초청장 한 장에 의지해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우리는 단일민족의 신화가 만들어 낸 ‘순혈주의’에 익숙하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양화되면서 가족의 형태와 가치관도 조금씩 달라졌지만 운명으로 엮인 순수한 혈연 공동체라는 의식은 큰 변함이 없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를 더욱 공고히 한다. 결혼이주민에게는 국적이 다른 두 가족이 있다.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가족, 그 가족을 구원할 부유한 한국의 가족.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어서 자신의 희생으로 가족들이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부모 형제를 떠나 한국으로 온다. 우리가 되기 위한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다문화 가족’이라는 이름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촬영 대상자들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정작 어려운 것은 카메라 앞에 세우는 문제였다. 흔쾌히 촬영에 응하는 분도 있었지만 꺼려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분들은 동남아시아에서 온 여성과 결혼한 것을 내심 부끄러워한다든지 드러내는 걸 부담스러워했다. 촬영은 전적으로 남편이 결정했다. 결혼 이주 여성들과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도 어려운 문제거니와 의사 결정의 주도권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최종 결정은 언제나 남편의 몫이었다. 결혼 초기의 이주여성들은 남편에 의해 대리되고 중계되는 삶을 산다고 할 정도로 주체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남편의 주도권은 외부의 차별적 시선을 걸러 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가부장의 권력이 더해져 이중의 고통이 되기도 했다. 그 속에서 그녀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그 단적인 예는 국적에서도 드러난다. 사진 속에서 한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아내만이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이들이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일은 생각보다 절차가 까다롭다. 우선 결혼 후 일정 시간이 지나야 신청 자격이 주어지고, 막상 신청한다고 해서 모두 국적을 얻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아내가 국적을 취득하면 떠나갈까 봐 남편이 아내의 국적 취득에 소극적인 경우도 있다.
촬영은 연출을 최소화함으로써 촬영 대상자가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을 취하고자 했는데, 카메라를 대하는 태도에서부터 드러나는 가족 간의 관계와 질서 등에 유의했다. 이러한 가족 관계 속에서 결혼 이주 여성들의 위치가 결정되었다. 집에는 그들의 삶과 상이한 문화가 서로 부딪히고 스며들어 있었는데, 집 안에서 입는 옷, 집을 꾸미는 방식, 소품의 종류와 배치에 유념하면서 촬영을 진행했다. 유독 눈에 띄는 것은 거실에 붙여 놓은 한글판이었다. 어린 자녀의 한글 교육을 위한 것이지만 결혼 이주 여성들이 배우고 익혀야 할 언어의 문제를 보여 주기도 했다. 동남아시아에서 온 엄마와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는 한국과 한글로 묶인 공동 운명체였다.
촬영을 하면 할수록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녀들의 고향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 한국으로 와야만 했을까? 이 물음은 그녀들의 근원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고 노력하지만,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과 동남아 사람들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은 한국 생활에 쉽게 정착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 속에서 그녀들의 정체성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새로운 가족과 국가를 얻었지만 쉽게 동화되지 못하고 경계에 선 그녀들, 디아스포라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자 한다. 이제 그녀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고향’으로 시선을 돌린다.
article
[서경식 작가]
이동근
1966년 부산에서 태어나 경성대학교 멀티미디어 대학원 사진학과를 졸업하였다. 어릴적부터 주변부로 여겨지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많아 자연스럽게 그들을 사진으로 기록하게 되었다. 현재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북 아시아에서에서 진행되는 이산의 과정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난민에 주목하고 다큐멘터리 직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결혼이주여성과 그들의 가족, 탈북민 등 동시대의 디아스포라에 관하여 심층적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초청장(An Invitation), KT&G 상상마당 갤러리, 서울, 2013 포함하여 열 번의 개인전과 PHOTOVILLE2018, New York, USA외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으며, 제10회 일우사진상 다큐멘터리 부분 수상, 제5회 KT&G 상상마당 한국사진가 지원프로그램 최종작가로 선정되었다. 부산대학교, 부경대학교, 부산교육대학교, 경성대학교, 부산시립미술관,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사진관련 강의를 하였으며, 현재 경성대학교 사진학과 외래교수로 재직 중이다.
[개인전]
2019 아리랑예술단(유랑극장), 일우스페이스, 서울
2017 초청장(An Invitation), 서학동 사진관, 전주
2017 모던시티-좌천아파트, 공간 이다, 하남
2017 모던시티-좌천아파트, 사진공간 배다리, 인천
2017 초청장, BCUT갤러리, 서울
2016 흐르는 길, 킴스아트필드 미술관, 부산
2016 모던시티-좌천아파트, 예술지구_p, 부산
2013 초청장(An Invitation), KT&G 상상마당 갤러리, 서울
2012 Joy Castle, 1839갤러리, 순천
2009 Joy Castle, 경성대학교 미술관, 부산
[그룹전]
2019 돌아보다, 부산 자원순환협력센터 아트스페이스, 부산
2019 PHOTOVILLE2019, New York, USA
2019 세창냉동 테스트베드, 세창냉동, 울산
2019 Memoirs of BUSAN, 신세계 갤러리, 부산
2019 이웃하진 않은 이웃, KF갤러리, 서울
2018 PHOTOVILLE2018, New York, USA
2018 침묵을 흔들다. 40계단 문화관, 부산
2018 부산리턴즈, F1963, 부산
2017 2017 리수이 사진축제, 리수이 ,중국
2017 경계 BOUNDARY, KT&G 상상마당 대치 아트홀, 서울
2016 홈그라운드, 청주시립미술관, 청주
2016 극장전, 송정역 시민갤러리, 부산
2016 제3회 수원국제사진축제, 수원
2016 골목들, 부산시립미술관 용두산미술전시관, 부산
2016 도시의 풍경-집을 만나다, 아트스페이스 누리봄, 부산
2016 사진적 카이로스 KT&G 상상마당 아트센터 갤러리, 춘천
2016 한국사진학회 국제영상사진전 photo speak 2016 규레이팅 및 전시, 상명대학교, 서울
2015 극장전, 보따리 170, 부산
2015 회동담화, 예술지구_p, 부산
2015 Family Album. LIG ART SPACE. 서울
2015 망각에 저항하기, 안산문화예술회관, 경기도 안산
2015 한국사진학회 국제영상사진전 photo speak 2015 큐레이팅 및 전시, 프랑스 문화원, 부산
2014 1839 Photography Residence, 상상문화 발전소, 순천
2014 동상이몽, 예술지구_p, 부산
2014 새집에 보따리를 풀다, ㅇ + ㅅ빌딩, 부산
2014 멋부산, 민주공원전시실, 부산
2014 Two Dimensional Dancing, Vision Fine Art Gallery, AZ, USA
2013 변주된 풍경들, 신세계 갤러리, 부산
2013 사진 미래색2013, 고은사진미술관, 부산
2013 사진과 사진, KT&G 상상마당 갤러리, 서울
2013 기억의 저편, 부산예술회관, 부산
2012 남해안 프로젝트, 1839갤러리, 순천
2012 산복도로 다시보기 프로젝트‘기억의 풍경’, 좌천시민아파트, 부산
2008 대구사진비엔날레 기획전 숲, 경북대학교미술관, 대구
2008 돌아와요 부산항에, 부산시립미술관, 부산
2008 흙의 노래, 영광갤러리, 부산
2007 영월그리기, 동강사진박물관, 영월
2007 이데올로기로써의 몸, 영광갤러리, 부산
2007 동강사진축제 거리설치전, 영월
2007 오래된 정원, 영광갤러리, 부산
2006 밤, 부산시립미술관, 시민갤러리
[소장]
KT&G 상상마당
영월사진박물관
[수상]
2018 제10회 일우사진상 수상
2012 제5회 KT&G 상상마당 한국사진가 지원프로그램 최종작가 수상
[목록으로]






















